최유경 선생(1343-1413) 조명 학술 세미나 6일 개최
강직한 선비정신 본받고 진정한 효 정신 조명
강직한 선비정신 본받고 진정한 효 정신 조명

 

용인시에서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세미나가 열린다.

용인에는 오래 전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이라는 말이 구전되어 오고 있다. 이 성어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근원에 대한 설도 분분하다.

‘추천석’이라는 이름으로 진천과 용인에 살았다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이야기를 비롯해, 용인으로 시집갔다가 진천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양쪽 아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자 관가에서 “살아서는 진천서, 돌아가셔서는 용인서 모시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야기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 대부분이 근거가 없는 전설일 뿐이다.

용인문화원은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 오는 6일(금) 오후 2시 용인문화예술원 3층 국제회의실에서 ‘평도공 최유경(崔有慶, 1343-1413) 선생 조명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날 세미나는 선생의 삶과 발자취를 조명하고, 그가 축성한 숭례문과 풍남문의 건축사적 의미를 밝힘과 동시에 그의 큰 아들 최사위(崔士威)로 이어지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유래를 조명, 시민에게 효 문화를 고취시키기 위해 마련된다.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주인공은 바로 려말 선초 문신인 최유경 선생이며, 그의 출생지는 진천이지만 그의 묘가 기흥구 공세동 자봉산 기슭에 있다.

 최유경의 큰 아들 최사위는 생전에는 진천에서 부친을 모셨고, 사후에도 부친의 묘소 아래 여막(廬幕)을 짓고 3년간 시묘를 하다가 자신이 죽으면 그 자리에 묘소를 마련하라고 유언, 죽어서도 부친을 가까이 모시겠다는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이에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성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부친을 모시고자 했던 최 씨 가문 자손의 효행심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것을 학술적으로 규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경기도박물관 김성환 학예팀장이 ‘최유경 선생의 생애와 발자취’를 발제하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이경미 전문위원이 ‘숭례문과 풍남문의 건축사적 의미’를, 그리고 강남대 국어국문학과 홍순석 교수가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유래와 효(孝)’를 발제한다.

지정 토론자로는 이정찬 과천문화원 이사를 비롯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최기영 대목장, 윤승준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정양화 전 용인향토문화연구소장, 권오진 경기도의회 의원, 박남숙 용인시의회 의원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용인문화원 김장환 사무국장은 “평도공 최유경 선생이 남긴 족적을 통해 강직한 선비정신을 본받고, 그가 축조한 숭례문과 풍남문의 문화재적 가치를 규명함으로써 자랑스런 용인의 인물로 선양하고자 한다”며 “특히 그의 아들 최사위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 생거진천 사거용인에 담겨 있는 진정한 효 정신을 밝히고 이를 부각시켜 용인이 충효의 고장으로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고 밝혔다.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 1343-1413) 선생은 조선 개국공신에 서훈된 인물로 축성도감의 직책을 띠고 서울의 도성(한성)을 쌓았으며,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호남 제일의 문루인 풍남문을 건립했다.

효성과 청렴결백한 성품으로도 이름이 난 인물로 태종조에는 청백리로 이름을 올렸으며 세종대왕은 그의 효성을 듣고 친히 효자정문을 내리기도 했다.

호는 죽정(竹亭)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평도(平度)는 선생의 시호이다. 선생의 묘역은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산1-1번지 일원에 있으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0호이다. 선생의 묘역에 조성된 사당 이름을 ‘효렴사’라 한 것은 그의 청렴한 기상과 효행에서 연유한 것이다.

(문의 용인문화원 031-324-9600, http://www.ycc5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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