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구 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임  송금연

추석 연휴에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의 책을 읽었다. 그가 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알게 되었다. 선관위 직원에게 공직 선거 기간은 업무 외에 그 어떤 것도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시간이기에, 대통령 선거만 끝나면 그의 책들을 일람하리라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그의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었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었던 자폐증, ‘투렛 증후군’, ‘코르사코프 증후군’, 시각 인식 불능증, 음색 인식 불능증, 신경매독, 위치감각 상실 등등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성 신경 장애를 겪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책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심한 누군가는 지적 장애나 신경증이라고 통칭해 버릴 병증을 겪는 인간을 호기심에 찬 소년이 보물섬 지도를 더듬어 가듯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던 그 책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훗날 그의 책이 번역되어 출간될 때마다 나는 청포도 맛 사탕을 사러 뛰어가던 10살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책들을 샀다.

신경과 의사인 색스는 ‘뇌가 고장난’ 사람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며(치료가 어렵다는 점에서 이 과정을 통상적인 의미의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경험을 다수의 책으로 남겼다. 단순히 신경과 의사가 쓴 임상기로 치부하기에는 그 책들이 담고 있는 인문학적 통찰과 위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매우 아름답고 가끔은 서글프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좌우하는 뇌의 일부에 문제가 생긴 인간이 온전한 지성체일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한 번이라도 품어 본 적이 있는 이들에게 색스의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막연한 인상이 아닌 구체성을 띤 인간을 그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 때 자폐증인 아들의 투표권 행사에 대해 문의해 온 아버지와 직원의 통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아버지는 ‘우리 부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선거의 의미와 투표권이라는 공적 권리 행사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통화를 들으며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에 나오는 자폐증 환자이자 동물학자인 템플 그랜딘과 그녀의 부모를 떠올렸다.

공직선거법 제18조 제1항은 “금치산 선고를 받은 자는 선거권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법이 개정되어 금치산제도가 성년후견 제도로 변경되면서, 현재는 기존 금치산 선고를 받았던 자들과 피성년후견인들의 선거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 규정을 예로 들어, 보통, 자유, 비밀, 직접 선거의 원칙상 투표권은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서 현재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치매 환자의 선거권 제한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공직선거법 제15조는 ‘19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19세 이상인 자에게 선거권을 인정한 입법 취지를 감안해 인지 능력을 상실한 치매 환자들의 선거권을 제한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선거 능력이 일정 정도의 인지 능력이나 합리적 판단 능력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선거능력은 투표의 의미(자신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가 무엇을 위한 선거인가?)와 투표 결과(후보자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당선된다는 사실) 두 가지만 이해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미성년, 지적 장애나 인지 장애, 치매, 심지어 금치산선고나 성년후견선고도 투표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두 주장 모두 논리적으로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지만, 현실은 이론처럼 명확하지도, 거침없이 논조를 펼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도 않다. 법을 집행하는 일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은 더욱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공직선거법상 19세 이상인 자는 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금치산자와 피성년후견인은 선거권이 없다. 그러므로 금치산자나 피성년후견인이 아닌 19세 이상인 자라면 선거권이 있다.’ 초등학생 정도의 인지 능력을 가진 자폐증 아들에게 선거의 의미와 투표권 행사 방법을 가르쳐 주고 싶다던 아버지는 이런 짧고 건조한 설명에 납득했을까, 올리버 색스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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