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려

첼리스트 김홍민
첼리스트 김홍민

지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첼리스트 김홍민의 독주회가 열렸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을 가득 메웠고, 첼리스트 김홍민은 단정하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셔츠 차림으로 피아니스트와 함께 무대로 걸어 나왔다.

그가 선택한 첫 번째 프로그램은 A.Scarlatti의 Sonata No.1 in D minor. 종교적이면서도 공감각적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김홍민의 음색과 만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자아냈고, 정직하면서도 순수함이 깃든 소리 한음 한음은 청중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왠지 모를 믿음감을 불러 일으켰다.

기대감을 상승시킨 후, 두 번째로 연주됐던 곡은 L.V.Beethoven의 Sonata No.4 in C Major 였는데, 개인적으로 이 곡이 김홍민 리사이틀의 ‘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연주에서 ‘꼭 폭발적인 감정으로 연주해야만 음악의 격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어떤 진리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의 내면엔 오랜 시간 동안 응축시킨 음악적 에너지가 있었고, 완벽하게 계산된 치밀함과 정확함으로 그 에너지를 차츰차츰 표출해 나아갔다.

선대의 작곡가들이 써 놓은 귀중한 기록들에 대한 그의 신뢰와 무의식적 에너지는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였는데, 감성적인 연주보다 더욱 음악을 격정적으로 몰아갔고,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지 않고도 관객들에게 존재와 뉘앙스만으로 뜻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정도를 걷는 연주자’로서의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1부의 마지막 곡으로 선정된 곡은 F.Chopin의 Polonaise Brillante Op.3이었다. 조금은 분위기를 변환해보고자 선곡한 곡으로 느껴졌는데, 첼로와 피아노 듀오의 호흡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1부와 2부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매개 역할을 하는 곡으로써 곡 선정이 매우 탁월했다고 여겨진다.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2부는 R. Schumann의 Fantasiestücke Op.73과 A. Piazzolla의 LeGrand Tango로 구성되었다. 프로그램의 선정만 보아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주고자 한 김홍민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는데, Schumann은 아티큘레이션처리가 명확하게 들릴 정도로 전달력이 좋았다. 하지만 슈만이 청력 장애를 극복하고 작곡했던 곡이었던 만큼 이곡만큼은 감정표현을 좀 더 격하게 보여주었으면 감동이 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A. Piazzolla의 Le Grand Tango였는데, 홀이라는 공간을 장악해 나아가는 연주자로서의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곡이 아니었을까싶다.

억눌려 있던 무언가를 김홍민은 몸짓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음악적 울림으로 해내려 애썼는데, 어떤 순간의 울림은 매우 기억에 남았고, 눈 길 속에 있는 들쥐의 움직임을 소리로 파악해내어 낚아채는 스트릭스 네불로사(Strix nebulosa)1)처럼 매우 기민하고 예리하게 음정과 리듬을 잡아내었다.

연주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이성적 끈을 놓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는 마지막 앵콜을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관객들은 크게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쳤고, 김홍민은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하였다.

첼로 앞에 앉은 김홍민은 여러 번 줄을 맞추려 시도하다가 피아노 앞으로 가 앉았고, 이윽고 피아니스트와 김홍민은 크리스마스메들리를 연탄 하였다. 철저하면서도 이지적인 연주를 했던 김홍민은 사라지고, 의외성을 가진 김홍민 만이 무대 위에 남았다. 이 또한 굉장히 영리하게 계산된 그의 연출은 아니었을까?

의외성을 가진 첼리스트 김홍민. 앞으로 그가 펼치고자 하는 음악의 행보가 본 연주회를 통해 조금은 더 궁금해졌다. 음악인으로서의 그가 어떤 길을 걸어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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