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천중학교 학생회 선거 지원 소감-

의왕시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임 송금연

고등학생인 조카의 책상에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가 놓여있었다. AR, VR,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요즘에도 이런 오래된 책을 읽는다는 게 신기해서, 무심코 들쳐보았다. 나는 칼라풀한 삽화가 가득한 금성출판사판 어린이용 동화책으로 읽었던 것 같은데, 조카가 보는 소설은 그다지 예쁘지 않은 흑백의 삽화가 드문드문 그려져 있고 성인 소설 못지않은 두께여서 낯설고 묘하게 슬펐다. 바다거북을 잡아먹고, 바다표범 기름으로 불을 밝히고, 탐험대가 섬 이곳저곳을 탐방하는 모험담이 주는 재미와 짜릿함을 온전히 느끼기에는 나는 집의 편안함과 안전함에 너무 길들여져 버린 것 같다. 무엇보다도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본 소설에서 제국주의와 차별, 배제 같은 소년 소설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떠올린 탓인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15소년 표류기」에는 백인 소년 14명과 흑인 견습 선원인 모코가 등장한다. 모코를 포함하여 15소년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모코는 다른 소년들과 달리 학생도 백인도 아니기 때문에 소년들과 불평등한 일종의 주종관계로 묶여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소년 소설이고, 모코는 14명의 철부지들을 생존케 하는 핵심 인물이기 때문에 모코에 대한 차별이나 배제가 소설 안에서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적 권리는 부정되고 근로 의무만 있다는 점에서 모코는 보통선거의 원칙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심한 소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코에게는 대표(대통령) 선출 투표권을 주지 않고 그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다. 쥘 베른이 살던 시대에는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제 학생회장, 부회장 3인을 선출하는 중학교 학생회 선거 지원을 나갔다. 잘 웃고 떠들썩하고 개구진 중학생들의 맑은 눈을 마주하다보니, 문득 조카의 책상에서 본 열다섯 소년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사전투표 장비를 이용해 미리 인쇄해 간 연두색, 노란색, 하늘색 투표용지 3장을 받아 들고 기표소에 들어가 기표를 하고 줄서서 투표함에 넣는 학생들은 자못 신중하고 진지했다. 후보자간 공약을 비교해보고, 자신의 선호에 따라 투표를 하고, 직접 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했던 이 짧은 경험이 훗날 투표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선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제 그 곳에 투표하지 못하는 모코는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느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고, 1인 1표를 당연하게 행사할 수 있는 보편적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 문득 고마워진다.

저작권자 © 경기시사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